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피부과학

피부과학(7) 우리나라 화장품의 역사(근대 이후)

by 레아쌤 2026. 3. 2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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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해방 이전: '박가분'의 흥망성쇠

근대 화장품의 효시: 1916년 등장한 박가분은 한국 최초의 근대적 화장품으로, 1922년 제조허가 1호를 받으며 국민적 인기를 누렸습니다.

납 중독 사건: 피부 밀착력을 높이기 위해 배합된 연납(납 성분)의 독성으로 인해 사용자들에게 피부 변색, 구토, 경련 등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생했습니다.

사회적 파장: 1937년 생산 중단에 이르기까지, 기생들의 고소 사건과 자살 시도 등이 조선일보 등 당시 언론에 보도되며 큰 사회적 물의를 빚었습니다.

 

2. 해방 이후: 서구식 미용의 확산

대표 품목의 변화: 클렌징과 마사지용 콜드크림, 가볍게 흡수되는 영양크림인 바니싱 크림, 남성용 포마드가 주류를 이루었습니다.

미용 기술의 전문화: 1948년 미용사 자격시험이 제정되면서 미용이 체계적인 전문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.

스타일의 변천: 쪽진 머리에서 퍼머넌트(웨이브), 전통 복식에서 짧은 치마와 뾰족구두를 착용한 '신여성' 스타일로 외형적 변화가 뚜렷해졌습니다.

 

3. 박가분(朴家粉)1916년 상표 등록된 한국 최초의 브랜드 화장품입니다. 두산그룹의 모태인 '박승직 상점'에서 제작·판매하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.

박가분(서울역사박물관 소장)

패키지 디자인: 직육면체의 종이 상자 형태로, 뚜껑에는 동백꽃무늬와'朴家粉'이라는 한문 상표가 인쇄되어 있습니다.

광고 포스터: 1920년대 신문에 "잡티가 없어져 얼굴이 고와집니다"라는 문구와 함께 '귀부인 화장계의 대왕'이라는 파격적인 카피를 사용했습니다.

실물 유물: 현재 서울역사박물관이나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에서 당시의 고형 분과 포장지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.

 

4. 박가분과 두산그룹

두산의 뿌리, 박승직 상점: 두산그룹의 창업주인 박승직이 1896년 서울 종로(배오개)에 문을 연 '박승직 상점'에서 박가분을 판매했습니다. 사은품에서 히트 상품으로 변신하게 된 박가분은 원래 박승직의 아내인 정정숙 여사가 포목을 사는 손님들에게 덤으로 주던 가루였으나, 반응이 좋아 1916년 한국 최초의 상표 등록 화장품으로 정식 출시되었습니다.

그룹 성장의 발판: 1920년대 박가분은 하루에 1만 갑 이상 팔릴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박승직 상점이 근대적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.

그러나

납 부작용 사건: 박가분에 포함된 납(백연) 성분으로 인해 피부 괴사 등 부작용 문제가 불거지며 1937년 생산이 중단되었습니다.

'두산'으로의 새 출발: 박승직의 아들 박두병 초대 회장이 1946년 상점 이름을 '두산상회'로 바꾸면서 지금의 두산그룹 체제가 시작되었습니다.

두산그룹은 박가분이라는 소비재로 시작해 현재는 에너지와 인프라 중심의 중공업 그룹으로 완전히 탈바꿈했습니다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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